<상담 2회 차>
K군은 상담 2회 차에도 지각을 하였다. 그 이유는 직장에 들렀다가 왔기 때문이고 다음 주 상담 시간에는 상담실로 곧바로 오겠다고 하였다. K군과의 대화 초반에 다이어트 얘기부터 시작하였는데 상담자가 질문을 하자마자 말문을 막기에 충분한 엉뚱한 답을 하였다. 이것은 자기주도성을 가지고 상황을 주도하려는 의도에서 나오는 엉뚱한 답하기로 이 글에서는 동문서답으로 명명하기로 한다. 이 동문서답은 자폐성장애인과의 대화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동문서답하기는 질문의 핵심을 교묘히 빗겨가는 답을 하면서 대화의 상대를 실망시킨다. 이런 이유에서 자폐성장애인들과의 대화 시도는 실패로 끝나기 일쑤고, 자폐성장애인은 무능한 존재라고 낙인찍기에 아주 좋은 상황을 자폐성장애인 근로자들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상담자는 K군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다음은 상담자가 질문에 맞는 답을 얻기 위해 K군의 대답을 지연시키면서 K군과 나눈 대화들을 정리한 것이다.
만날 때마다 할머니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에 못 만나는 동안 할머니가 뭐라고 잔소리했는지를 물으니 할머니의 잔소리의 내용이 아닌 K군이 할머니 안마해 드린 것과 할머니 다리가 계속 안 좋아서 돈 벌기가 힘들다고 하며 박스 리어카 올릴 때만 같이 밀어드리는데 할머니가 박스 리어카 끄는 것은 10년 됐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비교적 소상히 할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K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직장 일에 대한 K군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질문을 하였더니 ‘근무하고 월급 받아요. 한 달에 한 번, 17일에 100만 원 이상, 통장정리를 해보니까 할 만해요. 수협은행’ 이라고 하며 일 외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동문서답을 하였다. 통장 잔고를 확인했는지에 대해 ‘네, 아니오’ 로 답을 하면 될 텐데 ‘120만 원 이상, 까먹을 수 있어요.(생각을 안 할 수 있고, 말을 하기 싫을 수 있고, 생각이 안 날 수 도 있어.)’ 하면서 또 동문서답 하였다. 다이어트를 한 이유에 대해서는 뜬금없이 ‘영수(가명) 생각이야.’ 라며 자신을 드러내고 계속해서 다이어트 한 이유에 대해서는 ‘살이 통통 쪄서 싫어하니까’ 하면서 연애할 때라고 덧붙였다. 살이 찌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는 자신의 생각을 ‘제 생각이에요. 연애참견을 봤는데 장우성, 시즌3부터 44화’ 라고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져서 물었더니 대뜸 ‘20살부터. 배우고 싶은데’ 라고 하였다. 연애도 배워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애려서 말을 못하잖아요. 책을 많이 못 봐서’ 라고 또다시 동문서답을 하였다. 실제로 연애하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애려서 말을 못하잖아요.’ 라고 하는 것은 핑계일까 하는 생각으로 다시 물으니 ‘맞아요.’ 라고 하였다. 장애가 있지만 20대 피끓는 청년의 순수한 고백을 들었다. 계속해서 동문서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 K군의 진심도 담겨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화였다.
이어서 K군은 자신이 참가했던 수도권 지역의 특수학교 기능경진대회 이야기와 전국 특수학교 경진대회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K군은 학교 다닐 때 직업훈련과 관련해서 중2 때는 제품포장 등을 했었고 ‘학교 다닐 때는 1등 했으니까 좋았어요.’ 라고 회상을 했다. 또 학교 다닐 때 나빴던 것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는데 ‘영수가 선생님 말을 안 들어서 손들고 벌섰어요. 초3, 중2, 고3 때, 그 때는 ’반성을 못해서 기분이 나빴어요,’ 라며 또 아리송한 말을 하였다.
K군과의 대화는 동문서답에 감춰진 K군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었다. K군은 다른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지, 또 누구랑 해 봤을지 궁금해졌다. 이런 대화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였다. 대화중에 계속 거슬리는 것은 ‘영수는 말을 못 했어요.’ 라고 반복하였는데 진위를 따져보기 위해 말을 못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를 재차 확인하였다. 그랬더니 ‘영수가 말을 안 했어. 다 할 수 있는데 안 했어.’ 라는 의외의 답을 하였다. 의외의 답이기는 하였으나 비교적 진솔한 대화였다. 자폐성장애인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인데 그것을 못한다고 바꿔서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담 2회 차에 확인한 것은 K군이 직장 생활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근무하면 월급 받는다는 것과 한 달에 한 번 통장정리를 통해서 17일에 100만 원 이상 수입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또한 수협은행 등 급여에 대한 정보를 매우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따라서 직장생활은 할 만하다고 말한 것은 K군의 진심이었다. 일상에서는 ‘제 생각이에요. 애려서 말을 못하잖아요. 책을 많이 못 봐서’ 등 핑계를 대면서 때에 따라서는 동문서답을 하였고 때때로 자기의 잘못으로 인한 질책을 받을 시에는 인정하지 않고 ‘반성을 못해서’ 라고 하면서 동문서답 식의 엉뚱한 표현을 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읽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음도 K군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K군의 문제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마음먹기)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