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반 교실에서 있었던 일
1학기가 시작되고 4월경의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0 0는 오늘따라 괘 오랜 시간동안 진득하니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평소 2~3 숟가락이면 끝나던 점심을. 너무도 기특해서 00옆으로 가 보았더니 함박스테이크 위에 뿌려진 소스부분을 마치 칼로 오려내듯이 동그랗게 남겨두고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아이가 맛있게 식사를 하는 것 같아
'선생님이 소스를 치워 줄 테니 조금만 더 먹자.'라고 하며
밥을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게 독려했다.
0 0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숟가락을 집어던지고는 볼풀로 들어가 앉아서 들은 척도 안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 내가 잘못 말했구나!' 싶었다.
가정에서는 물론 아동의 주변인들조차도 아동을 돌보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어서
섣불리 아동의 행동을 통제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아동은 날이 갈수록 고집이 세어지고
주변인들을 계속 힘들게 하고 있는 터였다.
나는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으나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아이가 너무도 맛있게 먹는 터라
엄마의 마음으로 그만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게 된 것이었다.
새 학년 올라와 이 아동과는 처음으로 부딪히는 상황이었다.
잠시 일관성에 대한 고민을 한 후, 오늘은 세 숟가락을 더 먹어야 하는 것으로 목표를 세우고
아이에게 조금만 더 먹기를 요구했고 이런 실랑이는 5교시가 끝나기까지 계속 되고 있었다.
'괜히 시작했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많이 후회했다.
교실 밖에는 아이의 모니터교사가 와서 아이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잠시 모니터 교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하고 아이와의 신경전은 계속 되었다.
부르면 책상 앞으로 와서 숟가락을 집어 들고는 나를 한번 바라보고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는 다시 볼풀로 되돌아가기를 어언 2시간 동안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0 0는 그 누구의 말에도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란 생각에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한 숟가락만 먹자고 다시 0 0를 불렀다 .
그 다음순간 00는 숟가락을 집어 들더니 다 식어빠진 함박스테이크를 깨끗이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말릴 새도 없이....
나는 너무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 0 0에게 참으로 고마웠다.
나의 말을 들어준 것에 대해서. 그리고 0 0도 다른 아이들처럼 그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상호 관계 속에서 살 수 있는 아이란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제 집에 가자하며 교실 문을 여는데 0 0는 인사도 하지 않고 뛰쳐나갔다.
'0 0야.' 하고 부르니 막 뛰어가던 아이가 그 자리에 멈춰서 나를 바라보았다.
'인사하고 가야지. 이리 오세요.'
잠시 후 0 0는 내 앞으로 왔고 '안녕히 계세요.'하고는 자리를 떴다.
모니터선생님은 어떻게 하신 거냐고 되물으며 놀라워했다.
지금까지 0 0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가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했었다.
그래서 가족이나 주변인 들은 0 0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고 그냥 아이가 하는 대로 따라만 갔었는데 이번일로 가족들도 매우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아이를 양육하며 부모나 교사인 우리들은 아이에게 그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아이들이 우리의 요구에 반응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먼저 답을 말하거나 행동해 버림으로써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의 말을 무시해도 된다는 식의 교육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교사로서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나서 아이 스스로 자기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 것뿐이다.
아이는 책상과 볼풀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자기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고민을 한 것 같다.
선생님의 말을 들을까? 아님 고집을 부려 볼까?
그 시간은 아이와 교사 모두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0 0에게 고맙다.
자신의 가능성을 나에게는 보여 주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은 너무도 지루하고 힘든 일이지만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은 '나를 사랑해 주세요.'를 이렇게 표현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