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뽀얀 피부에 아주 잘생긴 아이였는데 자기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신체부위는 거의 없을 정도로 중증의 장애아였다.
그러나 이 아이는 머리가 아주 좋았다.
세자리의 수 곱하기 두자리 수의 곱셈을 암산으로 척 척 풀었다.
아이 옆에서 답을 받아 적으며 나는 매우 조마조마했다.
행여나 답이 틀리면 고쳐주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가 매우 힘들었으니까
손으로 잡거나 쥐거나 쓰거나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아서 이 아이는 모든 것을 말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아이는 자기의 필요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었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교사로서 이 아이가 장애를 극복하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의 생각은 나와는 달랐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걷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많아서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았다.
그 당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처음 배치 받은 새내기교사로서 뇌성마비란 장애는 나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장애였다. 나는 원래 청각장애에 관심을 가지고 전공을 청각장애로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뇌성마비 아동을 위한 최고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나는 부지런히 발로 뛰면서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들과 이 아이의 장애에 대해 공부하였으나 이 아이가 열심히 치료를 받는다고 하여 걸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사람이 직립 보행을 하기위한 전제 조건은 우선 두 다리를 딛고 설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은 정면을 주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혼자의 힘으로는 설 수도 정면을 볼 수 없는 정도였다.
물리치료실에서 틸팅 테이블이라는 것에 몸을 의지하여 10도, 20도 각도를 세워 90도까지 세워지고 난 후 정면 주시를 위해 얼굴을 고정하여야 하는데 뇌성마비란 장애로 인해 도저히 정면 주시가 어려웠었다.
그 때 이 아이의 나이는 11살이었고 나는 이 아이에게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 아이에게 주어진 학령기 동안 더 열심히 공부하여 성년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였다. 오직 머리로 암기하는 것에 의해서만 학습을 진행해야 했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시간이 배나 더 걸렸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로 궁리를 계속하면서 아이에게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왜 인지시켜야 하는지 수없이 고민하면서 그것은 사실이고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많은 선생님들을 만 날 것인데 과연 이 사실을 말해줄 교사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다른 교사가 아닌 내가 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아이에게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가혹할 수도 있는 일이겠으나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이 아이와 가족을 위해 좋은 일일거란 생각을 하였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1년이라는 시간 안에 혼자 서고 걸을 수 있으며 걷기 시작하면 뛸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받아들이는 이 사실을 왜 이 아이는 11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걸을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했는지........
사실을 알리는 것과 헛된 꿈을 꾸며 현실을 외면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진정 이 아이를 위하는 일이란 말인가?
정면을 주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아이의 일상은 번번이 전쟁터를 불사했다.
점심시간에는 밥 한 숟가락을 먹기 위해 보조쌤과 밥숟가락을 입에 넣기 위해 눈치작전을 펼쳤다.고개를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돌리는데 걸리는 시간을 알아야 밥을 조급이라도 빨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 아이는 항상 밥을 깨끗이 먹었다.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나는 그런 이 아이가 너무도 기특했다.
밥 먹기가 너무도 힘들지만 안 먹겠다고 투정하지 않고 열심히 받아먹으며 건강을 지키는 이아이가 너무 예뻤다.
어느 수업 시간에 나는 드디어 이 아이에게 걸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알려 주기로 마음을 먹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아마비 장애와의 비교를 통해서.
그때 당시도 소아마비 아이들은 보장구 없이 독립 보행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소아마비와 뇌성마비를 비교한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도 엄청나지만 어렵게 설명을 했다. 소아마비는 뇌에서의 어떤 신호를 전달하는 길이 없어진 것이라면 뇌성마비는 명령자체를 수행하는 신경계의 문제로 인해 올바르게 명령전달이 안 되는 것이라고
가라 라는 명령에 따라 다리가 움직여야 하는 데 갑자기 다리가 구부러지면서 몸의 균형을 잃을 수 있으니 너무도 위험한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나에게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