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초등학교 5학년
우리는 여름 방학을 마치고 2학기가 시작될 때 만났다.
얼굴은 온통 주근깨로 덮여 있고 자그마한 체구에 돌봄이 많이 필요한 모습이었다.
교실 문이 열리고
"안~녕 하세요?~~~~"
교실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냥 서 있기만 한다.
마치 들어오라는 말을 기다리듯이
처음에는
어서 오세요. 하며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런데 여러 날이 가고도 ♥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가 유일하게 생기가 도는 시간은 방과 후 활동 시간이었다.
미술을 했는데 아이 클레이 종류를 가지고 여러 가지 모양 꾸미기를 하는 것이었다.
솜씨도 있어서 제법 잘 만들곤 했다.
뭐라 하는지 듣고 싶어서 오늘 ♥작품은 교실에다 두고 보자 는 식으로 말을 하면 바로 얼굴 표정이 굳어지며 안 된다.고 한다.
집에 가지고 가겠단다.
그 외 보통 수업 시간에는 눈은 바쯤 감은 채 무기력한 모습만 보인다.
장래의 희망을 물어보니 아줌마가 되고 싶단다.
어째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아줌마가 되고 싶은 것일까?
아무리 이유를 물어도 더 이상의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원적반에 가면 책상에 엎드려서 잠만 잔다고 보조 선생님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 때문에 ♥는 이렇듯 의욕 상실의 아이가 되었을까?
야단도 치고 달래도 보고 질투심을 유발시켜 보기도 했으나 ♥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로 접어들던 12월 쯤 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교실 문을 열고는
안~녕 하세요?~~~~ 하고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날이 쌀쌀해 지기 시작했는데 교실 안으로 찬 기운이 들어와 얼른 교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날따라 ♥의 머리는 엉망이었다.
며칠 동안 감지도 않고 빗질도 하지 않은 듯 .......
나는 ♥의 머리를 다듬어 주기로 하고 미장원에 다닐 때 눈여겨보아 두었던 컷트 솜씨를 흉내내서 ♥의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게 된 일이라 신문지로 목둘레를 감싸고 분무기에 물을 담아 뿌리고는 잘 들지도 않는 가위로 모양을 내기 시작했다.
♥는 여전히 시무룩하게 앉아서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보조 쌤은 따뜻한 물로 머리 감길 준비를 하셨다.
잠시 후 부스스한 단발머리에서 보이쉬한 컷트로 변신
와우~
보조 쌤과 나는 너무 귀여워진 모습에 깜짝 놀랐는데 정작 본인은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얼른 머리를 감기고 거울 앞에 세웠다.
넘 예쁘다. ♥야
너도 한번 봐봐.
거울을 안보는 ♥에게 강제로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보게 했다.
갑자기 ♥의 눈이 커지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4개월 만에 처음 보는 ♥의 모습이었다.
♥야, 선생님이 머리 깍아 준 값은 3000원이야. 아빠에게 말씀드려라.
하교하는 ♥의 뒷모습에서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시키지도 않은 인사를 하고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교실 문이 열리고
안녕하세요?
명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다.
그리고는 싱글거리며 교실로 들어와서는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며 검은 봉지 하나를 꺼낸다.
아빠가 갖다 드리라고 했다면서.......
그 봉지는 귤 봉지였다. 3000원이라고 쓴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나는 ♥가 내 마음을 알아 준 것 같아 너무 기뻤다.
감사했다.
특수교사로서 진정 아이들의 삶의 변화를 목도하는 현장이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어떤 모습으로 놓여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진심으로 아이들을 염려 하는 마음으로 함께 할 때 우리는 이런 변화의 현장을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야 고마워.
